지금 우리나라 작명계는 한글 자음 가운데 ㅇ, ㅎ(후음) 을 土오행으로 보고, ㅁ ㅂ ㅍ(순음)을 水오행으로 보고 이름을 짓습니다. 이는 근본적으로 잘못된 일입니다. 왜냐하면 거의 모든 작명가들이 철석처럼 믿고 채용하고 있는 ‘후음은 土오행, 순음은 水오행’이란 소리오행관은 훈민정음 원본인 [훈민정음해례본]이 밝혀 놓은 소리오행 원리와는 정면으로 상치하기 때문입니다. 한글 창제의 윈리와는 정반대인 원리를 사용하여 남의 금쪽같은 아기의 이름을 지어 주거나 감정을 해주는 일은 잘못된 관행이므로 하루 속히 바로 잡아야 합니다. 훈민정음 원본을 간단히 살펴봅시다.
[훈민정음해례본]은 한글(훈민정음)이 발음기관의 모양에 따라 ㄱ,ㅋ은 아음(어금닛소리), ㄴ,ㄷ, ㄹ , ㅌ은 설음(혓소리), ㅁ ㅂ ㅍ은 순음(입술소리), ㅅ ㅈ ㅊ 은 치음(잇소리), ㅇ ㅎ 은 후음(목구멍소리) 으로 한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적어 놓았습니다.

하늘과 땅의 이치는 하나의 음양오행뿐이다. 사람의 말소리의 근본은 오행에 있는 것이다. 이것을 사계절에 짝지어도 어그러지지 않으며, 이것을 오음(五音)에 맞추어도 어긋나지 않는다.
목구멍은 깊숙하고 물기가 있으며, 물(水)에 해당한다. 소리가 비고 거침없음은 물이 투명하고 맑아 잘 흐르는것과 같다. 계절로는 겨울이요, 소리로는 우(羽)다.
입술은 모나지만 어울리니 흙(土 )에 해당한다. 소리가 머금고 넓음은 마치 땅이 만물을 품어 간직하면서 넓고 큼과 같다. 계절로는 늦여름이요, 소리로는 궁(宮)이다.
각(角) 치(徵) 궁(宮) 상(商) 우(羽)
ㄱ,ㅋ ㄴ, ㄷ, ㄹ, ㅌ ㅁ, ㅂ, ㅍ ㅅ, ㅈ, ㅊ ㅇ , ㅎ
각(角) 치(徵) 궁(宮) 상(商) 우(羽)
ㄱ,ㅋ ㄴ, ㄷ, ㄹ, ㅌ ㅇ, ㅎ ㅅ, ㅈ, ㅊ ㅁ, ㅂ, ㅍ
 
위의 두 표에서 보듯이 우리나라 작명계(작명가/작명책)는 아음, 설음, 치음에 대해서는 [훈민정음해례본]과 똑같이 오음을 배속하고 오행을 배속하고 있지만 순음과 후음에 대해서는 정반대로 보고 있습니다. 곧 [훈민정음해례본]은 순음 ㅁ ㅂ ㅍ을 오음으로는 궁(宮)이요, 오행으로는 土라고 보고, 후음 ㅇ , ㅎ을 오음으로는 우(羽)요, 오행으로는 水라고 보고 있으나 작명계는 이와 정반대로 순음을 우(羽)와 水, 후음을 궁(宮)과 土로 보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정확히는 모르겠으나 작명가 99%가 ㅇ, ㅎ 을 土오행으로, ㅁ ㅂ ㅍ을 水오행으로 보고 이름을 짓고 있다고 추정합니다. 이는 작명학계의 오류입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요?
첫째, [훈민정음해례본]이 없는 상태서 훈민정음 연구가 이뤄진 때문입니다.
세종대왕이 1443년(세종 25년)에 창제하여 1446년(세종 28년)에 반포한 훈민정음 원본은 현재 국보 70호로 지정돼 있는 [훈민정음해례본]이 유일합니다. [훈민정음해례본]은 훈민정음 해설서로서 500년 동안 형체도 없고 말도 없던 상태였는데 1940년 안동에서 발견되었습니다.
[훈민정음해례본]이 발견되기 전까지는 훈민정음 간행에 관한 기록이 없었으며 최세진(崔世珍), 신경준(申景濬), 유 희(柳 僖)같은 조선시대 학자들도 그 원본을 보았다는 기록조차 없습니다. 곧 이들은 훈민정음 원본을 못 본 상황에서 훈민정음을 연구했습니다.
최세진은 1517년 [사성통해(四聲通解]를 통해 순음(ㅁ ㅂ ㅍ )은 우음(羽音) 이며 水오행이고, 후음(ㅇ ㅎ )은 궁음(宮音)이며 土오행이라고 적었습니다. 이는 순음은 궁음이며 土오행이고, 후음은 우음이며 水오행이라고 밝힌 [훈민정음해례본]과는 정면으로 배치되는 첫 번째 기록입니다.
신경준은 1750년 [훈민정음운해(訓民正音韻解)]를 통해 순음은 우음이며 水오행이고, 후음은 궁음이며 土오행이라고 최세진과 똑같은 시각으로 적었습니다.

둘째, 왜곡된 논리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인 때문입니다.
이어 현대에 와서는 1937년에 한글지가 [훈민정음운해]를 연재했고, 1938년에 조선어학회가 [훈민정음운해]를 단행본으로 펴냄으로써 순음은 우음이며 水오행이고, 후음은 궁음이며 土오행이란 주장이 확대재생산되고 기정사실처럼 되기에 이르렀습니다.
작명가들도 이 주장을 따라 만들어진 작명책을 토대로 작명을 하다 보니 순음은 水오행이고, 후음은 土오행으로 굳어진 것이라고 판단합니다.
조선시대 중기이후 여러 학자들이 한글의 제자원리를 연구하였으나 그 원리를 완전하게 들추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던 차에 [훈민정음해례본]이 발견됨으로써 훈민정음의 모든 이치와 원리가 밝혀지게 되었습니다. 밝혀진 내용은 글자의 기원설, 글자꼴, 글자들의 바른 소릿값, 반포한 날 등입니다. [훈민정음해례본]이 발견되기 전까지 훈민정음에 관한 기록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훈민정음 창제목적을 천명한 [훈민정음예의본]이 있었는데 여기에 적힌 내용은 세종실록과 월인석보에 실려 있었습니다. 그리고 [훈민정음예의본]을 한글로 옮겨 적은 [훈민정음언해본]은 더러 남아있었습니다. 다만 훈민정음 창제목적을 천명한 [훈민정음예의]와, 글자를 지은 뜻과 글자 사용법 등을 풀이한 [훈민정음해례]가 함께 붙어있는 온전한 훈민정음 원본은 1940년 안동에서 발견된 [훈민정음해례본]이 유일합니다. 그런데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반포한 이후 왜 훈민정음 원본이 자취를 감추었을까요. 그 가장 큰 까닭은 포악한 군주의 대명사인 연산군이 1504년에 언문금지령을 내리자 너도나도 훈민정음 원본을 불태우는 등으로 없애버린 때문이라고 학자들은 보고 있습니다.